추천합니다! [오늘의 청소년책 북토크] 여름방학, 가고 싶은 치유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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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7-05 13:34 조회 1,189회 댓글 0건본문
여름 방학,
가고 싶은 치유의 공간
고정원, 김윤나 구산동도서관마을 사서, 이승헌 구산중 3학년
방학이 되면 시골 할머니 댁에 간다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시골에 사는 할머니도 없거니와, 친척들 모두 고향이 서울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청소년문학에서도 시골이 배경인 문학이 찾기 어려워졌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거나 추억을 쌓은 경험을 가진 이들이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가 개봉했을 때, 목가적인 분위기와 사계절이 담긴 영상미, 그리고 생생하게 표현된 슬로우 라이프는 많은 도시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여전히 황순원 소설가의 <소나기>처럼 우리를 깨워 줄 동심과 치유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신선한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해 줄 청소년문학을 기대하며,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청소년문학과 영화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눴다.
다르면서도 닮은 지역에서
김윤나 저 어렸을 때는 방학이나 명절이 되면 시골 친척 집에 가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승헌 학생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들었어요. 요즘은 시골 친척 집에 가는 청소년이 많이 줄었는데,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이승헌 초등학생부터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한 달에 한 번씩 가족들과 여행을 갔어요. 바닷가를 가거나 시골 할머니 댁에 가곤 했죠. 할머니 댁에서 강아지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물고기 떡밥을 통발에 놓기도 하고, 새벽에는 잠이안 와서 마을회관에 가서 밤새 별을 보기도 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들 일하시는 것도 보고요.
고정원 이야기만 들어도 재미있었겠는데요. 마지막으로 간 건 언제예요?
이승헌 최근에 간 것은 초등학교 3, 4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형이 성인이 된 후에가족과 갈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서 시골에 가기 힘들어졌어요.
고정원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들이 많았을 텐데, 낯선 장소에 대한 느낌은 어땠나요?
이승헌 이질감은 없었어요. 가자마자 놀 생각에 늘 신이 났었거든요.
고정원 도시를 벗어난 공간을 이야기하는 대다수 책들을 보면 인물들이 시골에 도착하고 난 뒤 느낀 불편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승헌 학생도 그런 점을 느꼈나요?
이승헌 잠자리가 바뀐 불편함 정도? 벌레가 많았어요. 특히 파리가 많았죠. 아무리 잡아도 벌레가 계속 나와서 밤이 끝나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고정원 그렇군요. 저는 지방 갈 때마다 빨리 어두워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윤나 맞아요. 시골은 칠흑 같은 어두움이 있잖아요. 24시간 밝은 서울과는 다르게요.
이승헌 밖에 나가면 생각보다 밝았어요. 별이 많거든요!
김윤나 정말 멋지네요.
또 다른 세상과의 조우: 『붉은 무늬 상자』
고정원 그럼 우선 시골을 배경으로 한 책들을 먼저 살펴볼까요? 단편집 『파란 아이』에는 강촌에서 할머니와 함께 여름방학을 보내는 주인공이 나와요. 실제로 지방에 계신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부모에게 청소년을 맡기고 가는 경우들을 볼 수 있대요. 최근에 출간된 공선옥 작가의 『선재의 노래』를 보더라도 할머니와 둘이 사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읽다 보면 갑자기 고아가 되어 버린 선재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 모습에 울컥 눈물이 나더라고요. 양호문 작가의 『중3 조은비』, 『꼴찌들이 떴다』에서는 지방 청소년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요. 도시에서 살던 아이가 시골에 간 이야기가 아니라, 원래 지방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려 내어 인상적이었어요.
김윤나 『붉은 무늬 상자』는 주인공 벼리가 아토피 치료를 위해 시골로 전학을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벼리는 엄마가 사들인 폐가에서 그곳에 살았던 열일곱 여울의 사연을 접하며 학교폭력과 편견에 맞서는 용기를 배우게 되지요.
이승헌 특히 소설 앞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에 아토피에 걸렸던 제 경험이 생각나서인지 벼리의 사연에 공감할 수 있었어요. 이 책은 낯선 곳에서 전학 온 벼리에게 마음을 쉽사리 열어 주지 않는 학급 친구들과의 갈등도 함께 그려 내요. 주인공은 방과 후 폐가에서 세나와 ‘붉은 무늬 상자’를 발견해요. 그리고 과거에 학급 친구 고현의 낙서(거짓 소문) 때문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잃은 여울이의 사연을 알게 되고요.
고정원 여울이가 남긴 일기장을 통해 과거 있었던 학폭의 실체를 안 주인공은 침묵할 때 폭력이 더 견고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용기를 내게 되지요. 『붉은 무늬 상자』에 나오는 산골 이다 학교에서는 전교생이 60여 명이에요. 우리는 시골에 관해 이야기할 때 흔히 ‘공동체성’을 생각하잖아요. 학급 인원이 적다 보니 서로를 잘 알기도 하고요. 실제로 시골 교실은 어떨 것 같아요?
이승헌 소설을 보면서 텃세가 있다고 느꼈어요. 60명 남짓 되는 전교생들이 늘 자기들끼리 함께하다가 전학 온 낯선 친구에게 유독 경계하는 것 같았고요.
고정원 한 가족이 양평으로 내려와 겪는 일화를 그린 소설 『싸가지 생존기』(손현주)에도 비슷한 모습이 나오는데요. 자세히 보면, 그건 텃세를 부리는 게 아니라 낯선 사람에게 낯을 가리다 보니 생겨난 오해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나중에는 인물들이 전학생을 기다려 주는 모습도 나오고요.
김윤나 친구를 기다려 준다니, 『붉은 무늬 상자』에 나오는 아이들 모습과는 다르네요.
이승헌 처음에 책표지를 보고 ‘낭만적인 힐링 소설이겠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뒤표지를 살펴보니 가해자, 학교폭력이라는 단어가 인쇄된 걸 보고 ‘심상치 않겠구나.’ 예상했어요. 막상 읽으면서 크게 놀라지는 않았어요. 이야기가 흡입력 있고 재미있었거든요.
김윤나 낯선 집을 방문해서 우연히 비밀 상자를 발견하고, 그러다 상자의 주인공(여울)을 알게 되면서 사건의 실체를 청소년들이 추리해 가는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고정원 작중 상자의 무늬가 붉어서인지 공포스러웠어요. 특히 낡은 가죽구두를 묘사하는 대목에선 무서웠어요. 벼리의 엄마가 이끌리듯 폐가를 산 이유는 이해가 안 갔어요.
김윤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거기엔 엄마의 어릴 적 추억이 깃들어 있었으니까요(편집자 주: 소설에서 엄마는 폐가를 살피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낸 집 같다고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인 그곳
고정원 강원도 이주기를 그려 낸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김희주)를 보면 폐가에선 유독 풀이 빨리 자란다고 해요. 금방 정글이 되어 버린다고 하고요. 저자들처럼 혹시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있나요? 이승헌 지금 사는 곳이 익숙해서인지 다른 지역에 가끔 놀러 가면 좋은 정도라면 좋을 것 같아요. 아직까진 다른 곳에서 살면 불편할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어요. 고정원 홍수로 물에 잠겨 버린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SF소설 『다이브』(단요)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해요. “서울은 언제나 한국의 동의어였다.” 그러니까 서울을 제외한 곳은 다 시골이라고 서울 사람들은 무심하게 말하곤 하죠. 지방은 그런 우리가 이따금 ‘여행 가는 곳’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지방에서의 삶에 대해 특별히 고민해 보지 않고 막연히 낭만적일 거라고 생각하죠. 시골을 우리의 ‘삶의 터전’이라고 여긴 적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시골에서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 봤거든요. 이승헌 부모님께서 진지하게 “시골로 전학 가서 살 수 있겠니?”라고 물어본 적 있었어요. 이사도 가야 하고 새로운 학교에 적응해야 하고… 낯선 곳으로 가면 불안할 것 같아서 그때는 부모님께 안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나중에 여쭤보니까 네가 괜찮으면 부모님은 시골에 내려가도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하셨대요. |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김희주 지음│일토│2022 |
김윤나 진짜 시골로 갔다면 학교생활은 물론 주변 환경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고정원 일단 교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정말 멋있겠죠? 학급당 인원이 적어서 더 친해질 수 있을 것 같고요.
이승헌 시골에는 한 학년이 한 반이 되거나 학급 친구들이 5∼7명 사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요. 그럼 친구 관계에 더 각별하거나 조심히 대할 것 같아요. 3년 내내 같은 반에서 지내고, 서로 간 가정 상황도 좀더 자세히 알 테니까요. 사실 저는 충남 태안에서 살아 보고 싶었어요. 갯벌에 가서 조개도 잡는 등 태안에서의 좋은 추억들이 많거든요. 신기한 해양 생물이 많았는데, 살아 있는 생명들을 마주하면서 즐거웠어요.
고정원 특히 노을이 예쁘죠? 사는 곳에 따라 사람들의 삶이 다른 만큼, 도시인들의 가장 큰 특징은 계절을 잘 모른다는 점이라고 해요. 시골에서는 모내기 철이 되면 ‘5월이구나.’ 짐작할 수 있고 내 주위의 자연이 바뀌는 걸 금세 느낄 수 있어요. 다채로운 도시의 변화만큼 지역에서의 풍경 역시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곤 하지요.
우리에게는 기억하고 기대고 싶은 장소가 있다
김윤나 『붉은 무늬 상자』의 아쉬운 점에 관해 이야기 나눠 볼까요? 죽은 소녀의 죽음을 파헤치는 형식의 추리 요소는 좋았던 것 같아요. 어쩌면 성차별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대개 여학생의 죽음을 다룬 서사를 보면 전형적인 패턴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책에서도 여자로서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마을의 소문으로 인해 여울이가 죽음에 이르잖아요. 조금은 식상했어요. 2022년에 출간된 소설인데도 말이죠. 한창훈 소설가의 『순정』에서도 섬마을에 사는 소녀 수옥이 마을에서의 이상한 소문에 휩쓸려 바다에 몸을 던져 죽는데 이런 패턴들이 이제는 달라질 필요가 있어요.
이승헌 저도 이야기가 급박하게 전개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여울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고현이 글을 올린 후 댓글을 단 사람이 증인을 모았을 때 증인들이 너무 쉽게 모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갈등이 쉽게 해소될 수 있나 싶었고요.
고정원 마지막에 벼리의 친구, 세나의 고민도 명확히 해결되지 않고 세나의 캐릭터에 힘이 안 실린 부분이 아쉬웠어요. 세나의 캐릭터가 여울이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캐릭터 같았어요.
고정원 그럼에도 저는 시골을 배경으로 한 청소년문학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계속 말할 수 있는’ 이야기성이라 생각해요. 서울이었다면 살던 집이 흔적도 없이 빨리 사라져 버리는 탓에 기억이 희석될 텐데, 한 곳에 정주하는 사람들은 늘 주변을 기억해 주잖아요. 『붉은 무늬 상자』에서도 어느 집에 누가 살았는지를 이웃들이 다 아는 것처럼요.
김윤나 시골, 고향, 할머니라는 단어들이 주는 특유의 향수가 있어요. 이제 고향이라는 단어도 희미해지는 것 같아요.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잘 없고요.
이승헌 저에게도 오래된 기억이 있어요. 시골에 계신 저희 할머니 품에 안겼을 때 은은하게 나는 특유의 향기를 기억해요. 저는 그게 고향의 느낌인 것 같기도 해요.
고정원 『붉은 무늬 상자』처럼 아토피 치료를 위해 주인공이 시골로 간다던가, 성장소설 『챌린지 블루』(이희영)처럼 미술 공부를 해 온 주인공이 손이 다쳐 시골에 가는 설정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요. 이들은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 늘 또 다른 곳으로 떠나는 듯해요. 그러고 보니 시골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 주는 애니메이션이 무척 많네요.
이승헌 마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2001)를 추천해요!
김윤나 애니메이션 <늑대아이>(2012)도 엄마가 늑대인간의 운명을 타고난 아이들을 몰래 키우기 위해 시골에 내려가요. 극중 시골에서 적응하기 위한 생활들을 엿볼 수 있어요. 일곱 살 상우와 외할머니와의 시골살이를 다룬 <집으로>(2002)가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던 주제와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고정원 고향이 우리를 치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나오는 작품이 또 있어요. 『꽃피는 고래』(김형경)는 한꺼번에 부모를 잃은 나은이가 아버지의 고향인 처용포에서 자신을 돌봐주는 이웃 덕분에 차츰 회복해 가는 이야기예요. 익숙한 말이지만, 시골을 치유의 공간으로 생각하는 건 지금 우리가 머무는 곳을 떠나 머물고 싶은 장소에 대한 바람 때문일지도 몰라요.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엄마 보고 올게.’, ‘할머니 보고 올게.’ 가볍게 말하며 다녀올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해요. 그곳이 시골이든 도시든 치유하고 싶은 곳에서 잘 쉬고 잘 살아내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