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합니다! [오늘의 청소년책 북토크] 카톡, DM, 페메 속 십 대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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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6-07 10:26 조회 1,237회 댓글 0건본문
카톡, DM, 페메1) 속
십 대의 얼굴
고정원, 김윤나 구산동도서관마을 사서, 안소윤 예일디자인고 1학년
청소년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SNS와 관련된 이야기들입니다. 주인공들은 각종 SNS에서 관계를 맺기도 하고 끊기도 하면서 소설은 더욱 흥미로워집니다. 청소년들은 수업이 끝난 후에도, 다른 학교로 전학 간 후에도 SNS를 통해 관계를 유지합니다. SNS는 그들의 익숙한 대화 채널 중 하나입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 풍경 중 하나라는 뜻이죠. 이번 호에서는 SNS를 소재로 하는 책들 중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호주 작가 올리버 폼마반의 『나를 팔로우 하지 마세요』를 읽고, 청소년들의 생활 속 SNS 이야기를 나누어 봤습니다.
1) 페이스북 메시지의 줄임말이다.
SNS 속 청소년 그리고 가족 관계
정원 청소년들을 오래 만나면서 드는 생각은 그들은 SNS에 쉽게 적응하고 도구를 빠르게 바꾼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새로운 SNS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데, 그나마 익숙해질 때쯤이면 청소년들은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해요. 예전에는 주로 페이스북을 썼지만 이제는 대부분 이탈하여 인스타그램, 트위터, 틱톡을 주로 사용하는 청소년들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처음 청소년들을 만났을 때는 싸이월드나 버디버디를썼는데, 지금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청소년들은 싸이월드 모르겠죠?
소윤 알아요. 예전에 엄마가 쓰던 싸이월드 계정에서 제가 어린 시절에 찍은 사진을 다운받으려고 접속한 적 있거든요. 지금 플랫폼 환경과는 다르긴 하지만 쓰기가 어려웠던 건 아니었어요. 소설 『나를 팔로우 하지 마세요』의 주인공인 열네 살 ‘비(본명은 벨로니카 비, 줄여서‘비’라고 불린다)’의 엄마처럼, 부모님이 저의 사생활을 낱낱이 올린 건 아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의 엄마한테 짜증이 났거든요. 사람들이 SNS에 자기 일상을 많이 올리기는 하지만, 청소년이 된 딸의 일상을 부모가 반복적으로 올리는 건 좀 아니잖아요.
윤나 맞아요. 주인공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엄마가 인스타그램에 딸의 생활을 업로드하는 걸 허락받긴 했지만, 비의 성격상 엄마의 부탁을 거절하기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하기 싫다는 말만 했어도 좋았을 텐데요.
정원 저도 그 부분에서 속상하더라고요. ‘어른 같지 않은 엄마’와 ‘어른 같은 딸’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착한 비가 미혼모로 살며 힘들게 자신을 키운 엄마에게안타까움을 느꼈기 때문에, 엄마가 자신의 이야기를 태어나기 전부터 인스타그램에 올리게 된 까닭을 이해하려고 한 것 같아요.
소윤 그랬을 것 같아요. 이 책을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마지막 대목은 마음에 안 들었어요. 엄마가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 ‘비의 연대기’를 ‘우리 연대기’로 바꾸어 모녀가 새로운 계정을 만들고 둘의 이야기를 함께 올리기로 하잖아요. 저는 이거야말로 타협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얼굴의 주인은 나인데 말이에요(소설에서 비는 엄마에게 “인스타그램 계정을 우리 모두를 위해 운영하자”고 제안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나라 소설이었으면 비에게 아빠를 만들어 주었을 것 같은데, 그런 결말을 맺지 않은 점은 좋았어요. 새아빠가 생기거나 생물학적 아빠가 나타나 행복하게 잘 먹고 잘살았다고 할까 봐 걱정했거든요.
정원 듣고 보니 그렇네요. 이따금 청소년들과 독서토론을 하면 우리나라 청소년소설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레퍼토리를 발견할 수 있어요. ‘섣부른 화해’를 종용하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고 해요. 청소년소설은 교훈을 주거나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듯해요. 온전한(?) 가족을 만들어 주거나 누구도 상처받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책은 그런 강박에서 벗어난 작품이에요.
'보여 준다는 것'의 강박
윤나 SNS는 소수의 사람들이 만들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 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어요. 마크 저커버그가 만든 페이스북이 그렇죠. 플랫폼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빨라 무섭다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어요. 이 모든 것이 결국은 광고, 즉 자본과 연결되니 앞으로는 SNS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상상할 수 없어요.
정원 앞으로 어떤 SNS가 생길지 예측하기 힘들어요. 사람들의 욕구에 맞게 온라인 환경이 바뀌고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디지털 도구가 생성되겠죠? 자본이 더 많이 개입할 수 있도록 교묘하게 시스템을 바꾸겠죠? 무료 이모티콘을 제공하다가 유료화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요즘 청소년들은 SNS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궁금해요.
소윤 친구들마다 다른데요. 일단 저는 카톡을 주로 써요. 카톡을 안 하고 인스타 DM으로 대화하는 친구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 최근에는 방과 후에 게임하면서 반 친구들과 디스코드(편집자 주: 음성, 채팅, 화상통화 등을 지원하는 메신저. 국내에서는 게임 유저들이 즐겨 쓰는 편이다.)로 대화하기도 해요. 다음 날 학교에 와서 게임하면서 나누던 대화를 이어서 하기도 하고요.
윤나 SNS가 친구를 사귀는 데 도움이 많이 되나요?
소윤 저희 학교는 특히 더 그런 것 같아요. 아무래도 디자인고를 다니다 보니 ‘덕후’나 ‘오타쿠’가 많이 모여 있어요. 그러다 보니 우리끼리 나누면 통하는 이야기들이 더 많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더 빨리 친해지죠. 아마 이쪽 분야에 관심 없는 아이들은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그냥 들어서는 전혀 모를 거예요.
정원 그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나는 것이 있네요. 도서관에 오는 청소년들이 말했는데요. 방과 후 SNS에서는 엄청 친해져서 이야기 나누다가 막상 다음 날 학교에서는 그 정도로 친밀한 건 아닌 것 같아서 사이가 어색했다 하더라고요.
소윤 맞아요. 그런 경우도 없지 않지만 온·오프라인 ‘관계의 진도(?)’를 맞추다 보면 분명 친해지게 돼요. SNS는 친구와 친해지는 데 도움이 돼요.
윤나 그러고 보니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도 SNS(극중 주인공은 하이텔과 같은 PC통신을 통해 채팅 화면에 접속한다.)로 친구가 된 펜싱 선수 이야기가 나오네요. 서로의 아픔을 잘 알고 공감하다 보면 온라인에서도 최고의 친구를 만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소윤 아무래도 관심사가 비슷하면 더 친해지는 것 같아요.
정원 SNS가 소통의 역할도 하지만 책에 묘사된 것처럼 전시의 역할도 하잖아요. 청소년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자기 생활의 조각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최근엔 ‘스토리’라고 해서 24시간만 보이고 하고 없어지게 하는 기능을 많이 쓰더라고요. 이게 전시의 목적일지 궁금하네요.
소윤 아무래도 자기 과시를 하는 데 유리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맛있는 것을 먹거나 나에게 친구가 많다는 것,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 등을 글과 이미지로 손쉽게 표현할 수 있어요. 가령 스터디 플래너를 찍어서 올리거나 공부한 시간을 기록할 수도 있거든요. 인스타와 트위터, 페이스북, 틱톡 등 매체에 따라 중심이 되는 주제들이 다르기도 하고요.
윤나 청소년소설 중에 그런 이야기들이 있어요. 가령 자신의 블로그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하다가 진정한 나 자신을 보여 주는 것에 대한 고민을 담은 소설들 말이죠. 대표적으로 『#좋아요의 맛』, 『브이로그 조작사건』이 있고, 사이버 폭력을 다룬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 『나는 안티카페 운영자』도 참고할 수 있어요. 읽다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받기 위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하지만 청소년 시기를 돌이켜보면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할 때구나.’ 싶어요.
변화하는 교우관계 그리고 '비교' 문화
정원 청소년들이 SNS를 한다고 하면 어른들이 걱정하는 부분은 범죄와 관련된 것일 텐데요.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를 다룬 소설 『데이지』, 교묘하게 합성된 ‘몸캠’으로 고통받는 친구의 억울함을 풀고자 분투하는 인물이 나오는 소설 『나를 지워줘』를 보다 보면 현실에서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다 싶어서 무서워지기도 했어요.
소윤 얼마 전에 독서동아리에서 읽은 청소년소설 『고요한 우연』에도 SNS로 친구를 사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말하기 어려운 속사정을 털어놓으며 익명의 누군가와 소통하는 모습이 그려졌는데요. 같은 반 ‘인싸’ 친구에게 일부러 접근해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대화하며 친해지는 행위는 사기(?)라 했지만요. 그렇게 친구가 생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어른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청소년들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서 본격적인 친구 관계를 맺지는 않거든요.
윤나 SNS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는 청소년들이 나오는 책들을 보면, SNS가 생활의 주요 도구 중 하나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오프라인에서 맺었던 관계, 즉 이미 이어진 관계를 더 깊게 연결하기도 하고, 아예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면서 인연을 시작하기도 하니까요. 『나를 팔로우 하지 마세요』에서 비에게 일부러 접근하는 친구들이 있는 것처럼요. 나아가 SNS를 통해 청소년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와 욕망도 면밀히 파악해 볼 수 있을 텐데요.
소윤 저는 비와 ‘애너벨’의 관계를 지켜보면서 둘의 심정이 이해되었어요.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었어요(편집자 주: 소설 속 애너벨은 비의‘절친’으로, 비의 계정에 한 번도 노출되지 않는다. 애너벨은 비가 자신이 창피해서 숨긴다고 생각하며 서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에서 애너벨은 비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존재다.). SNS를 보면 계속 타인과 나를 비교하게 되잖아요. 질투 나고, 자신에 대한 초라함이나 우월감도 느끼고요.
정원 정말 그러네요. 청소년들이 주로 ‘평범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들 하지만, 평범함의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인지 유독 SNS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는 것 같아요.
윤나 1987년생이자 밀레니얼 세대 문화 평론가가 쓴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정지우)를 보면 SNS에는 밝고 희망차고 화려한 이미지들로만 점철돼 있어요. 그것들은 대다수 ‘순간적인 이미지’들로 현실과는 간극이 있는데, 이를 청년 세대들이 가장 극명하게 느낀다고 해요. 청소년들 역시 그 간극을 느끼면서 불행감을 크게 느낄 테고요.
소윤 SNS에선 우울한 이야기를 안 하게 돼요. ‘박제될 만한 흑역사’도 남기지 않게 되고요. ‘내가 어떻게 보여질 수 있는가’ 혹은 ‘이렇게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에만 집중하게 돼요.
정원 내가 선별해서 보여 주고 싶은 것만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게 되는 거군요. 그리고 익명이고 싶은 순간에는 얼마든지 익명일 수도 있고요.
소윤 현실에서 쓰는 말투와 SNS에서 쓰는 말투가 다른 친구들이 많아요. 저 같은 경우도 평소에는 무뚝뚝하게 말하는데, SNS에서는 애교가 많은 성향으로 바뀌어요.
정원 아무래도 SNS에서는 좀더 부드럽게 말하는 것 같아요. 이모티콘도 많이 쓰게 되고요. 그리고 SNS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SNS를 매일 사용하지만 어디까지 쓰는지, 어떤 플랫폼을 쓰는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그 도구들의 기제와 자주 업로드되는 주제를 살피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싶어요.
윤나 도구의 환경은 계속 변화하겠지만 SNS는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아요. 청소년 시기에는 다양한 관계들을 연습해 보는 시기여서 많이 이용할 수밖에 없을 테고요.
소윤 어른들 사이에선 SNS가 학교폭력에 이용되거나 가담하는 도구로 인식되는 것 같아요. SNS의 유해성을 많이 논하는데, 실제로 그런 우려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저는 친구들과 대화용으로 잘 사용하고 있어요.
정원 카카오톡이 몇 시간 중단된 적 있는데, 제가 얼마나 카톡에 많이 의존하는지 알았어요. 사진도 못 보내고 단톡에서 이야기도 할 수 없으니 불편하더라고요.
윤나 문제는 SNS의 작동 기제가 기업(광고)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모르는 사이에 자본에 의해 우리의 기호와 관심사가 좌지우지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정원 카톡으로 돈을 쓴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어느 순간 친구들과 더치페이를 하고, 생일 선물을 쿠폰으로 보내고, 이모티콘도 사면서 자연스레 ‘결제’ 하는 것 같아요.
소윤 공기처럼 쓰는 SNS의 이면을 파악하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SNS를 감옥처럼 여겼던 비가 마침내는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고민했던 것처럼요.
정원 그래야 쉽게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타인과 비교하면서 초라해지거나 과한 우월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게 말이죠. 비교하지 않을 때 관계는 지속적일 수 있어요. 그럼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