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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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3-19 14:58 조회 5,505회 댓글 0건본문
김수정 서울 장안초 교사
‘회사원’. 학기 초 범식이가 자기소개서에 적은 장래희망이다. 회사원이 장래희망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범식이를 불러 어떤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것인지 물으니 녀석은 양복 입고 다니는 회사면 된다고 했다. 열두 살 난 아이에게 무어라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멋쩍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금은 고등학생인 범식이의 장래희망은 여전히 회사원일까? 그 아이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세상에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사는 데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 일은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아. 문제가 생겼을 때에야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지. 마치 공기처럼 말이야. 버스 운전도 그런 일이야. 우리가 잠든 깜깜한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버스는 곳곳을 다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간 맞춰 안전하게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지.(47쪽, 작가의 말)
하루에도 몇 번씩 버스를 타지만 버스 운전사를 눈여겨본 적은 없다. 잘 아는 것 같은데 막상 잘 알지 못한다. 사실 관심이 없었기에 잘 알지 못한다는 것도 몰랐다. 버스 운전사는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일한다. 운전대 옆에 있는 안내 방송 단추, 휠체어를 태우는 저상버스 단추, 거스름돈 단추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인다. 버스가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같은 번호 버스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려 주는 기계도 운전대 앞에 붙어있다. 책 속의 668번 버스는 정거장이 예순여덟 개나 되고, 전체 노선을 한 바퀴 도는데 세 시간이나 걸린단다. 버스회사에는 운전사 말고도 정비사, 청소원, 배차원이 함께 일한다. 글쓴이가 꼼꼼하게 취재하고 알려 주는 대로 따라가면서 버스 운전사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배운다.
책을 다시 읽으니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띈다. 새벽 3시 10분에 일어난 버스 운전사는 4시에 회사에 도착하고, 4시 30분에 손님들을 태우러 첫차를 운전한다. 새벽에 일어나 잠든 아들의 얼굴을 보며 출근할 때도,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도, 같은 버스를 만나 손을 들어 인사할 때도 내내 시계가 따라 다닌다. 일하러 가기 전 화장실에 들를 때도, 제시간에 들어오지 못해 밥을 허겁지겁 먹을 때도 아저씨 머리 위로 시간이 흐른다. 그러고 보니 책 속 668번 버스 운전사 아저씨는 늘 웃는 얼굴이다. 출근해서 동료들에게 인사할 때도, 운전하기 전 안전띠를 맬 때도, 새벽일을 하러 나가는 사람들을 태울 때도, 저상 버스 발판 위로 영후의 휠체어를 밀어 올릴 때도 항상 씩씩하다. 덩달아 나도 같이 웃게 된다.
사계절출판사의 ‘일과 사람’ 시리즈는 내가 아끼는 그림책 시리즈다. 2010년 중국집 요리사를 그린 이혜란 작가의 『짜장면 더 주세요』를 시작으로 현재 열일곱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패션 디자이너, 의사, 한의사, 뮤지컬 배우, 국회의원처럼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다룬 책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직업들을 이야기한다. 우편배달부, 소방관, 어부, 초등학교 선생님, 농부, 경찰관, 채소가게 주인, 책 만드는 사람들의 생활을 풀어냈다. ‘먹고, 입고, 자고, 배우고, 나누고, 즐기는 데 꼭 필요한 일’ 들을 다뤘다. 사람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는 편집자의 말이 와 닿는다.
나는 버스 운전사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고마운 일인지, 잘 알리고 싶어서 이 글을 썼어.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대접받고 즐겁게 일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어.(47쪽, 작가의 말)
큰 고민 없이 부모님의 뜻대로 교사가 된 나. 양복 입고 출근하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 괜찮다는 범식이.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수많은, 또 다른 나와 범식이들. 한 설문조사 결과 초등학생 장래희망 1위가 공무원이라고 한다. 어른들의 꿈을 대신 꾸는 아이들의 삶은 행복할까. 그래도 이런 책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우리 곁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소중하다. 땀 흘려 일하는 것을 정성스럽게 이야기해줘서 고맙고 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