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정 <내 생애 첫 번째 시>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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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6-07-18 10:55 조회 15,144회 댓글 17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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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 : 아동 한시 (조선 시대 동몽시, 선비, 성장, 시 짓기)
안대회 교수가 10여 년 공력으로 빚어낸 결정판 아동 한시 선집
― 옛 선비 140인의 어린 날의 시 약 200편
아동 한시, 그 넓은 세계로 초대한다
둥글고 빛나서 동산에 뜬 달과 똑같네.
용을 삶고 봉황을 구운 진미보다는 못해도
머리 벗겨지고 이 빠진 노인에게는 제일 좋구나.
- <두부>, 김시습 5세 (이 책, 268면)
노인에게는 천하진미보다 부드러운 두부가 더 좋은 것이라고 재치 있게 표현한 이 시는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이 다섯 살 때 지은 시다. 길을 가는 김시습에게 한 노파가 두부를 주자 그 감사의 표시로 지은 시로, 이 시 등이 널리 퍼져 이후 김시습은 오세(五歲) 신동(神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 물론 한자로 쓴 한시(漢詩)다.
이처럼 조선 시대에 아이들이 쓴 시는 동몽시(童蒙詩)라 하여 어른이 쓰는 일반적인 시와 구별하였다. 아동을 지식이 별로 많지 않다 하여, 동몽(童蒙)이라 불렀으니 동몽시는 요즘의 동시에 해당하는 말이다. 조선 시대에는 어릴 때부터 시를 쓰는 것이 교양의 하나였으나 아이들에게는 엄격한 격식을 강요하지 않아 비교적 생각대로 자유롭게 표현하였던바, 김시습의 시처럼 성장한 후의 시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발상을 볼 수 있다.
김시습뿐만 아니라 율곡 이이, 백사 이항복, 다산 정약용 등 저명한 학자와 정치가들이 어린 시절에 쓴 한시는 비교적 알려진 편이나, 그 외에도 옛 아동들이 쓴 시는 상당히 많다. 수십 편이 넘는 한시를 써서 아동 시인이라 불릴 만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작품이 남아 있지 않고, 시인의 이름도 잊혀졌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은 대부분 죽은 후에 문집을 남겼지만 어린 시절의 작품은 거의 수록하지 않았다. 성인의 기준으로 유치하다고 평가절하하고, 습작이나 미완성이라는 이유로 버린 것이다. 이제 안대회 교수의 감식안과 애정 어린 손길로 옮겨져 빛을 보게 된 대부분의 시들은 한 편 한 편이 경탄을 자아내는 빼어난 작품들이자 소중한 유산이다.
밤도 아닌데
봉우리마다 달이 떴고
봄도 아닌데
나무마다 꽃이 피었네.
오로지 검은 점 하나!
날 저물어 돌아가는
성 위의 까마귀 한 마리
- <눈>, 정창주 7세 (이 책, 114면)
첫째 개가 짖고
둘째 개가 짖고
셋째 개가 따라 짖는다.
범이 나타났을까?
바람 소리인가?"
"산 달이 촛불 켠 듯 환해요.
뜰에는 오동잎 스치는 소리뿐인걸요. "
- <개가 짖는다>, 이경전 7세 (이 책, 126면)
이경전(李慶全)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李山海)의 아들로 천재로 알려졌다. 반복구를 적절히 활용하여 시적 효과를 더해 주는 이 시 또한 아동 한시의 대표작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처럼 참신한 발상과 표현뿐 아니라 성숙한 주제의식을 보이는 작품도 적지 않다.
온갖 노력을 기울여서
똑같은 금전화
잘도 찍어 냈구나.
제 잘난 것만 뻐기고
가난한 사람을
도울 줄도 모르네.
- <금전화>, 허봉 9세 (이 책, 178면)
빠르게는 3세부터 늦게는 13세 나이에 쓴 동시는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내뱉은 의미 있는 발언이기도 하다. 세상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성장에의 욕구,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 혹은 미래에의 암시가 은연중 들어 있다. 전해오는 동시에는 훗날 위인이 될 징조를 보여주었다든가, 장수하거나 요절하거나 하는 운명을 짐작할 수 있었다는 사연이 함께 들어 있기도 하다. 아이가 밝은 미래를 암시하는 동시를 지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어른들이 그런 시를 짓도록 은근히 강요하기도 했다.
뭇별들이 다들 진을 치고
밝은 달 혼자만 장군이로군. (이 책 31면)
무엇보다 이런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동의 시에는 거짓이 없다는 믿음에서 나왔다. 아동의 시에 바라는 것도 우선은 자기가 본 대로 느낀 대로 쓰는 것이고, 그런 점을 높게 평가하였다. 정조 때의 저명한 학자이자 시인인 이덕무(李德懋)는 진실한 기쁨과 진실한 슬픔만이 진실한 시를 만들어낸다면서 아동이야말로 거짓되지 않은 시를 쓸 수 있다고도 하였다.
그렇다면 아동이면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었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자기 생각과 마음을 편하게 쓴다고는 하지만 일정한 격식을 갖춘 정형시인 데다 한자를 써야 하므로 시를 짓는 데는 당연히 어려움이 따랐다. 그래서 시를 짓는 것이 아동에게는 자신의 표현력을 뽐내는 수단이자, 어른에게는 아이의 영재성을 가늠해 보는 잣대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은 훌륭한 동시를 쓴 신동은 천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꽃에 비유하기까지 하였다.
실제로 이규보나 김시습, 이이, 허봉, 이산해, 이경전, 남구만, 이헌경, 목만중, 정약용 등 역사상 뛰어난 영재로 인정받은 인물들은 영재다운 능력을 어린 시절 지은 동시를 통해 세상에 널리 보여주었다. 조숙한 영재들의 동시는 독특한 시각과 사유를 담고 있어 대가로 성장할 잠재력을 미리 드러낸 것이다. 그중에는 청년기나 성인기의 작품과 차별화된 뛰어난 작품성을 가진 것이 많다.
아들 셋을 낳았는데
가운뎃놈은 양 볼이 납작하네
앞서거니 뒤서거니 떨어지니
누가 형이고 누가 아우일까.
-<세 톨 밤>, 이산해 7세 (이 책, 162면)
작은 산은 어떻게 큰 산을 가렸을까?
멀고 가까운 거리가 달라서라네. (이 책, 314면)
뛰어난 작품을 영재성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 예를 다 들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어쩌면 오늘 어른들의 기준으로 보면 이 책에 수록된 아동 한시의 지은이는 대부분 영재일 수 있다. 그 근저에는 어른들이 잊어버린 ‘왜 그럴까?’라는 왕성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자리한다. 자연현상과 인간세상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며 시로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당시 어른들이 아동에게 요구하거나 학습시킨 주제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체로 아동 한시에 나타난 정서는 적극적이고 활기차다. 한 주체로서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다부진 의지를 드러낸다. 때로는 어른들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당돌하고 불손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어른들과 경험이 다를 뿐 그들이 접하는 세계에 대해 가감없이 솔직하게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옛 동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바, ‘동심’이라는 이름에 가두기에는 어린이와 어린이 세계는 무한하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준다.
책머리에
2 자연과 계절을 노래하다
3 동식물과 어울리다
4 더불어 살아가다
5 사물을 그려 내다
6 짧은 구절 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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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있다. 묻힌 옛 문헌의 글들을 연구하여 선인들의 생각과 삶을 전하는 데 참된 길잡이가 되어 왔다. 특히 한시 번역의 유려하고 정갈한 문체로 이름이 높다. 《담바고 문화사》 《벽광나치오》 《선비답게 산다는 것》 《정조의 비밀편지》《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천년 벗과의 대화》 《18세기 한시사 연구》 등 여러 책을 쓰고, 《북학의》 《산수간에 집을 짓고》 외 많은 글과 책을 옮겼다. 10년 넘게 틈틈이 모으고 옮긴 옛 선비들의 어린 날의 시 약 200편을 묶은 ‘아동 한시 선집’은 오늘 아이들과 부모에게 전하는 더 없이 귀한 선물이다. ahnho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