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게_ 별에서 온 인간_ 김서형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8-01-25 10:19 조회 44,420회 댓글 1건본문
별에서 온 인간
1.
여러 해 전에 500피스 퍼즐 맞추기를 선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 관심이 없었던 화가의 그림을 퍼즐로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퍼즐을 단 한 조각도 제대로 맞추지 못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림 전체의 이미지나 분위기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백 개에 달하는 퍼즐 조각을 맞춰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몇 개의 조각에서 수천 개에 이르는 퍼즐을 쉽게 맞출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각각의 퍼즐 조각을 자세히 살펴보고 어떤 모양인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전체 퍼즐판의 모습을 이해하고 퍼즐 조각들이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 상상해보는 것이 퍼즐 맞추기에서는 더 중요합니다.
학문도 이와 비슷합니다. 오늘날 세상에 알려진 지식과 정보는 수많은 퍼즐 조각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이 수많은 퍼즐 조각을 모두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축적된 지식과 정보를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어떤 정보와 지식이 필요한지 선택해야 합니다. 내 삶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하고 선택하도록 돕는 것은 전체 퍼즐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의 기원과 역사를 살펴보는 빅히스토리는 전체 퍼즐판을 이해하는 학문입니다. 빅히스토리는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인간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인간이 진화하면서 어떤 변화들이 나타났을까?’ 등과 같은 큰 질문, 빅퀘스천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답을 다양한 학문과의 소통에서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상호관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 별, 달, 산, 강과 바다, 다양한 생명체, 그리고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의 과학 지식은 별에서 만들어진 여러 원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인간의 신체도 별을 구성했던 산소, 탄소, 질소 등의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기원을 설명하는 지식, 신화, 이야기 들을 탐색하다 보면 인간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겠지요.
빅히스토리는 밤하늘에 아름답게 빛나는 별을 보면서 별의 탄생 과정과 관련된 과학적 지식, 과거 인류는 별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별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요소들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커다란 그림을 상상할 수 있게 합니다.
2.
증권거래소에서 일하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던 그는 어느 날 그림을 그리겠다며 안락한 집을 뛰쳐나와 파리의 싸구려 하숙집에 들어갔습니다. 얼마간 파리 뒷골목을 전전하던 남자는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끼며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으로 떠났습니다. 외딴 섬의 이국적인 자연환경에서 자족적인 삶을 살며 그림을 그렸던 그는 무척 행복해 보였지요. 그가 죽기 전 완성한 벽화는 신성하면서도 원시적인 자연과 인간의 본능이 살아 숨 쉬는 걸작이었습니다.
이 남자는 영국 소설가 서머싯 몸의 작품 『달과 6펜스』의 주인공입니다. 몸은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의 전기를 읽고 영감을 받아 이 소설을 집필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에 나오는 그림은 고갱의 작품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묘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딸의 죽음, 건강 악화, 빈곤 등으로 힘들었던 고갱은 이 그림을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하고 그렸습니다. 오른쪽부터 세 명의 여인과 아기, 과일을 따는 사람과 과일을 먹는 소녀, 고통스러워하는 노인 등이 순차적으로 그려진 이 작품은 거대한 캔버스 안에 인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그림을 통해 인간의 기원과 일생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을 비롯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나름대로의 기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는 이 기원을 설명하는 여러 신화를 만들어냈습니다. 혼돈의 연못인 카오스에서 여러 신이 탄생했고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 알에서 깨어난 거인이 하늘과 땅을 비롯한 세계를 창조해냈다고 하는 중국의 반고 신화, 여섯 단계에 걸쳐 세상과 생명체가 창조되었다고 말하는 페르시아 신화, 하늘에 사는 대제사장이 나뭇조각으로 생명체를 만들었다고 설명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신화 등이 그 예입니다. 서구 문명의 발상지라 여겨지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메소포타미아부터 이집트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에서는 신의 피로 인간을 만들어 신에게 봉사토록 했다는 신화가 전해져 옵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땅의 구멍에서 인간이 나왔다는 신화가 존재하고, 불가리에서는 신과 악마가 흙으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신화가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쑥과 마늘을 먹은 곰이 인간으로 변해 낳은 아이가 나라를 세웠다는 우리의 건국 신화도 있지요.
물론 오늘날 이 같은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신화를 통해 우리는 인간과 세상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기원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오래전부터 이어져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세상의 기원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138억 년 전에 빅뱅이 발생해 우주가 탄생했고, 45억 년 전에 가스와 먼지 같은 물질들이 결합해 지구가 만들어졌으며, 지구의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명체들은 이에 적응하고 진화해왔음을 우리는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축적된 과학적 지식과 정보는 과거 어느 시기보다 정확하고 믿을 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우주와 생명, 인간의 기원과 진화에 관련된 이론의 등장과 축적은 19세기 이후 급속하게 발전했던 학문의 전문성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17세기 유럽에서는 과학적 실험과 관찰을 통해 창조론에서 진화론으로, 지구평면설에서 지구구형설로 우주관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과정이 있었고, 이런 과학적 이론의 발전은 다른 학문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19세기에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천문학, 생물학, 지질학, 고고학,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들이 독자적으로 발전하면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지식과 정보들이 축적되었고, 우리는 세상의 기원과 수많은 변화들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독자적인 학문의 성장과 발전은 다른 학문과의 소통과 공존을 단절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빅히스토리는 파편화되고 조각난 지식들을 우주라는 큰 틀 속에서 맞춰보고 재배열함으로써 지금까지 전혀 공통점이 없다고 생각했던 현상들을 연결해볼 수 있게 합니다. 세상의 기원은 과학적 지식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화와 전설, 민담, 역사적 사건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기원에 대해 인문학적 성찰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빅히스토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화와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흩어져 있던 지식 조각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기원을 찾다 보면 우리는 천문학, 화학, 물리학, 지질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기원과 행위, 역사를 고찰하다 보면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전혀 다른 학문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빅히스토리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연결해주고, 학문 간의 융합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세상의 기원을 연구하고 고찰하는 것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생명체와 사물들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토대를 제공합니다. 138억년+α의 시간을 분석하는 빅히스토리는 초연결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안내서인 셈입니다.
『그림으로 읽는 빅히스토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명화를 통해 우주와 생명, 인간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입니다. 세상의 다채로운 존재를 화폭에 담아낸 그림은 세상의 기원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매개체입니다. 하나의 그림에서 흩어진 역사적 사건과 과학적 지식, 종교적 이야기와 신화를 연결하는 작업은 인간과 지구, 생명체, 우주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살펴보고 상호연결성을 찾기 위한 작은 시도였습니다. 우리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그림처럼 이 책이 전달하는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세상의 비밀을 아는 즐거움을 선사하기를 바랍니다.
2018년 1월
김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