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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_ <폼나게 글 쓰는 법>_ 메멘토_ 1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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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1-10-21 09:16 조회 9,292회 댓글 2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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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 04_ 청소년 인물 / 역사소설



폼나게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청년이 있다. 이름은 유만주(兪晩柱, 1755~1788). 만 스무 살부터 33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흠영(欽英)』이라 이름 붙인 일기 스물네 권을 쓴 조선 선비다. 우리 역사에 숨어 있는 존재를 발굴해 현대 독자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소설로 형상화하는 「역사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 시리즈의 네 번째 권으로 설흔 작가가 유만주의 삶을 그렸다. 

내향적인 성격에 철마다 과거 시험에 응시하는 것 말고 다른 공식적인 활동이 없었던 유만주가 오로지 바랐던 바는 글을 잘 쓰는 것이었다. 그것도 역사에 관한 글을 멋지게 쓰고 싶었다. 절대 무명이라 할 그는 사마천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위대한 역사가가 되길 소망했다. 

역사 속 인물의 삶을 생생하게 형상화하는 데 탁월한 소설가 설흔은 청년 유만주를 소년 유만주로 설정하고 그가 폼나는 글을 쓰기 위해 벌였던 일을 슬랩스틱 코미디를 방불케 할 만큼 유쾌하게 되살렸다. 소년이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한 당대 최고의 문사였던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을 등장시켜 극의 흥미를 더하고, 두 사람의 대비를 찰지고도 재미나게 서술한다. 

소년 만주는 박지원에게서 폼나는 글쓰기의 비법을 배웠을까? 18세기 조선에서 박지원류의 자유로운 글쓰기가 일으킨 정치적 파장 속에서 소년 만주는 어떤 생각을 하며 글을 썼을까? 만주의 글쓰기와 삶으로 들어가 보자. 


최고 유명 작가 박지원 뺨치는 글을 쓰려고 
절대 무명 소년 만주가 벌인 
우습고, 가상하고, 처절하고, 슬픈 일들

폼나게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청년이 있다. 이름은 유만주(兪晩柱, 1755~1788). 만 스무 살부터 33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흠영(欽英)』이라 이름 붙인 일기 스물네 권을 쓴 조선 선비다. 우리 역사에 숨어 있는 존재를 발굴해 현대 독자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소설로 형상화하는 「역사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 시리즈의 네 번째 권으로 설흔 작가가 유만주의 삶을 그렸다. 

내향적인 성격에 철마다 과거 시험에 응시하는 것 말고 다른 공식적인 활동이 없었던 유만주가 오로지 바랐던 바는 글을 잘 쓰는 것이었다. 그것도 역사에 관한 글을 멋지게 쓰고 싶었다. 절대 무명이라 할 그는 사마천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위대한 역사가가 되길 소망하며 정진한 재야 역사가였다. 그는 유명한 인물보다 역사에 제대로 이름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진 이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잘 알려진 사건보다 안 알려진 사건에 눈길을 주었다. 책은 또 얼마나 좋아했던가. 아버지에게 받은 약값으로 약 대신 책을 사거나 책쾌와 아슬아슬한 흥정을 벌이며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원하는 책을 구한 열정적인 독서가이기도 했다. 

역사 속 인물의 삶을 생생하게 형상화하는 데 탁월한 소설가 설흔은 청년 유만주를 소년 유만주로 설정하고 그가 폼나는 글을 쓰기 위해 벌였던 일을 슬랩스틱 코미디를 방불케 할 만큼 유쾌하게 되살렸다. 소년이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한 당대 최고의 문사였던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을 등장시켜 극의 흥미를 더하고, 두 사람의 대비를 찰지고도 재미나게 서술한다. 

유만주의 아버지는 문장가이자 서화가로 알려진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이다. 유한준은 “알게 되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면 모으게 된다.”라는 유명한 문장을 남긴 사람이다. 그는 글쓰기에만 몰두한 아들의 고독한 삶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훌륭한 아버지기도 했다.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가 쓴 『나의 아버지 박지원(過庭錄)』에 자기 글을 신랄하게 비판한 박지원에게 앙심을 품은 소인배 정도로 소개되었지만 내외에서 두루 인정과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유한준과 박지원은 동시대 작가였으나 둘의 지향점이 달랐다. 유한준은 전통적인 글쓰기를, 박지원은 참신한 글쓰기를 구사했다. 문제는 우리의 소년 만주가 볼 빨간 사춘기 소년답게 트로트보다는 힙합을, 전통보다는 참신한 쪽을 선호했다는 점. 게다가 참신한 글을 쓰는 작가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전통적인 글을 쓸 수 있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배반한 소년 만주는 박지원에게서 폼나는 글쓰기의 비법을 배웠을까? 18세기 조선에서 박지원류의 자유로운 글쓰기가 일으킨 정치적 파장 속에서 소년 만주는 어떤 생각을 하며 글을 썼을까? 만주의 글쓰기와 삶으로 들어가 보자. 


‘생의 한 갈피에서 포착한 한 인물의 삶과 그의 시대’
― 역사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 

‘역사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은 인상적인 이미지나 사건, 혹은 특정 시기에 주목하여 한 인물의 삶과 그의 시대를 소설로 재현한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밀도 있는 중편으로 생의 한 지점을 서술한 것이 특징이다. 역사적 사실에 위배되지 않는 한에서 소설적 요소를 가미하여 인물이 가진 인간적인 매력과 서사를 되살리면서 작가의 눈으로 당대 사회를 해석했다. 소설 읽는 재미와 한국사를 배우는 지적 즐거움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성인과 청소년을 위한 역사서로서 손색이 없는 시리즈이다.


::: 지은이 설흔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역사 속 인물의 삶과 사상을 들여다보고, 상상력을 보태어 생생한 인물 묘사를 바탕으로 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공저),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 『우정 지속의 법칙』 등이 있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로 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대상을 수상했다. 


::: 책 속에서

“만주는 박지원이 자신에게 직접 알려 준 귀한 영업 비밀을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큰 글씨로 옮겨 적고는 그것을 바라보며 몇 시간째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 
이게 정말 폼나게 글을 쓰는 비법일까? 딱 봐도 아니네, 뭐.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 소년 만주는 그럴 수 없었다. 왜? 박지원은 자신이 존경하고 사랑하고 닮기를 바라는 유일한 작가니까. 심지어 아버지보다도 더! 더! 더! 작가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한마디에는 세상 전부와도 바꿀 수 없는 심오한 의미가 들어 있다고 여기는 훌륭하고 착실하고 순진한 소년이었으니까.” —33, 34쪽

“만주는 평생을 백수로 살았다. 돈을 번 적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아, 우리의 사랑스러운 소년 만주여!) 당장 쓸 돈이 없으며 가까운 미래에도 돈이 들어올 가능성이 희박한 이들이 그렇듯 만주 또한 머리를 굴려 [책을 손에 넣을] 꼼수를 부린다. 기본 골자만 보면 이렇다. 책쾌에게 책을 부탁한다. -> 원하는 책인지 확실하지 않아서 내용을 며칠 검토하고 싶다고 말한다. -> 책을 베낀다. -> 원하는 책이 아니라며 돌려준다.
변주가 조금 섞인 방식도 있다. 책쾌에게 책을 부탁한다. -> 책을 구입한다. -> 책을 베낀다. -> 환불을 요청한다.” —51~52쪽

“우리의 주인공 소년 만주는 박지원이 쓴 글 속에 자신이 풀지 못한 대답에 대한 실마리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박지원이 쓴 모든 글, 정확히 말하면 박지원이 쓴 글 중 금전과 친목을 통해 구할 수 있는 글들을 모두 구하기 위해 책 생태계를 이 잡듯 뒤지고, 그러다 깊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66쪽

“만주는 일기를 참 잘 쓰는 소년이었다. 요즈음 우스갯소리로 표현하면 ‘프로 일기러’였다. 그러니 만주가 쓴 일기는 대부분 우리가 보기에 흠잡을 데가 전혀 없이 그 자체로 훌륭하며 이미 완성된, 폼나게 좋은 글들이었다.” 112쪽

“우리의 주인공 소년 만주는 모든 분야의 글쓰기가 아닌 특정 분야, 즉 역사와 관련된 글을 폼나게 쓰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이 있었다는 뜻이다! 만주는 일기장 곳곳에서 이 소망을 밝힌다. 솔직히 말하면 하도 자주 밝혀서 소망을 토로한 글만으로도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을 지경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유독 우리의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만주는 자신의 내밀하고 내성적인 성격 그대로 누구나 알 만한 유명한 이들보다는 역사에 제대로 이름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진 이들에게 관심이 무척 많았고, 잘 알려진 사건보다는 안 알려진 사건에 눈길을 주었다.” —116쪽

“박지원의 비법들을 방 안 곳곳에 붙여 놓고 파이팅을 외친 뒤 야심 차게 붓을 들고, 들고, 또 들었는데도 어쩐지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는다. 써지지 않는 차원을 넘어 글이라곤 써 본 적 없는 초등학생처럼 숨을 헐떡거리며 자료들의 뒤를 무기력하게 따라다니기만 한다. (…) 끝날 기미가 없는 추격전에 지친 만주가 벽에 등을 기댔다. 이런 낭패가 있을까? 머리를 싸매고 한숨 쉬는 동안에도 청언소품은 수시로 튀어나왔지만 정작 쓰고 싶은 글, 폼나게 좋은 인물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131~132쪽

“만주는 오랜 고민 끝에 다시 만난 박지원에게 글이 폼나게 나오지 않는다고 털어놓은 순간 곧바로 알았다. 박지원이 혼탁한 눈을 멀뚱멀뚱하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것을 보고 사무치는 진실 하나를 깨달은 것이다.
‘이 사람은 그때 일을, 자기가 한 말을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하는구나.’” —167쪽

“이런 밤이라면 어쩌면, 다른 날이라면 몰라도 이런 밤이라면, 글을 폼나게 쓸 수도 있을 것 같은 희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만주가 붓을 들었다. 이인상의 단호한 책 <능호집>에서 보고 머리에 담아 둔 구절을 일기장에 옮겨 적었다. 말하자면, 우화등선한 나비 같은 불멸의 문장을. 
‘세계를 움직여 나가야지, 세계에 의해 움직여져서는 안 된다.’” —211~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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