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믿는 것은
모두가 진실일까?
힘센 거짓말의 횡포 속에 사그라든
세상의 연약한 진실들에 대한 이야기
모두가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었을 때
친구들과 셋이서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의 발을 걸어 보라고 한다. 나는 하기 싫다고 말한다. 친구는 결국 넘어져 팔이 부러진다. 발을 건 친구는 내가 한 짓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내가 아니라고 아무리 해명해도 믿지 않는다. 친구의 엄마가 우리 집에 전화를 하고 엄마는 사과를 한다. 엄마, 아빠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더 나쁘다며 내 말을 믿어 주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친구는 발뺌을 하고 선생님도 나를 믿어 주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진실보다 친구가 말하는 거짓말이 힘이 세다.
비난의 시선 속에서 억울하고 답답하지만, 하지 않은 짓을 했다고 말할 순 없다. 벌을 받고 오해를 받고 외톨이가 되어 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마음이 무거운 덩어리가 되어 온몸을 휘감는다. 덩어리가 목까지 차올라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혼자 외로운 주장을 계속하느니 저들과 한편에 서는 것이 숨통을 틔워 줄 것 같다. 아이들 앞에서 내가 한 짓이라고 거짓말을 토해 낸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덩어리가 비로소 내려가는 듯하다. 나는 오늘도 벌 청소를 하고 거짓말한 친구는 오늘도 나쁜 짓을 한다. 여러 사람이 진실이라고 믿는 거짓말이 나 혼자의 결백을 이겨 버렸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거짓들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것들 중에는 스스로 밝혀 낸 것보다 사회에서 받아들인 것이 많다. 학교에서 배운 것, 책에서 읽은 것, 신문에서 본 것, 인터넷에 정리되어 있는 것들이 별 의심 없이 진실이라고 믿어진다. 선택과 판단의 순간에도 상식과 여론처럼 공론화된 사회적 사실들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사회 속에 발을 딛고 사는 존재여서이기도 하지만 다수가 믿는 사회적 진실들이 개인의 생각을 지배하고 왜곡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믿는다고 해서 모두가 진실은 아니다. 책 속에서 학교 친구들은 선생님의 말을 믿고 선생님은 부모들의 말을 믿고 부모는 아이의 말을 믿고 아이는 친구의 말을 믿었지만 친구는 거짓말을 했다. 진실을 거슬러 간 끝에 거짓이 있었다. 그리고 잘못된 믿음이 쌓일수록 거짓말의 횡포는 심해졌다. 이 책은 주변에 있을 법한 작은 에피소드를 그려 내는 듯 보이지만 주인공의 숨 막히는 답답함은 큰 파장이 되어 우리의 현실과 일상을 거울처럼 비춰 준다. 주변에서 쉽게 놓치고 있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짚어 보게 하고 작고 연약해서 억울하게 사라져 간 세상의 힘없는 진실들이 얼마나 많을지 떠올려 보게 한다.
진실을 궁리하고 두드려 볼 수 있는 숨바꼭질 같은 이야기
진실은 여럿의 의견을 모아 결정하는 다수결의 문제가 아니다. 찬반의 가치 판단은 수가 많은 쪽으로 결정할 수 있지만 선악과 같은 사실 판단은 대중의 뜻을 모아 내릴 수 없다. 이 경계가 모호했던 시대에 진실을 다수결로 정하며 수많은 마녀사냥이 일어났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도 사실의 문제와 취향의 문제를 구별하지 못하고 진실에 대한 판단을 자주 타인에게 맡겨 버린다. 스스로 사실을 따져 보기도 전에 군중 심리에 기대고 가짜 뉴스에 휘말리며 쉽게 믿고 크게 단언한다. 다친 친구를 대신해서 주인공을 응징해 주겠다며 주먹을 휘두르고 쫓아온 친구는 우리들의 이런 어리석음을 보여 준다.
다수의 의견은 공고하고 두텁기 때문에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하고 질문하지 않는 이상 거짓의 덫에 걸려들기 쉽다. 주변에 부화뇌동해 당장 편리한 입장만 취하다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을 추종하고 진실을 공격하는 편에 서 있게 된다. 작가는 책 속에서 정확히 누가 발을 걸었는지를 숨겨 둠으로써 진실에 대한 판단을 독자들의 몫으로 던져 주었다. 경계에서 흔들리더라도 자주 반대편을 기웃거리며 진실에 대해 촉수를 세우는 유연함이 세상의 거짓말들을 이기는 방법임을 이야기 속에서 함께 경험하게 한다.
‘불편함’을 그리는 작가가 던지는 낯선 위로
독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이야기는 권선징악으로 끝맺지 못한다. 발을 걸어 친구를 다치게 하고 거짓말로 주인공을 괴롭힌 아이의 잘못은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왜 거짓말 앞에 무릎을 꿇으며 자신의 결백을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하고 포기했을까. 작가는 그림 속에 그 답을 마련해 두었다. 주인공은 수많은 선과 벽, 문 앞에 서 있거나 다른 인물들과 반대편에 홀로 떨어져 있거나 구석에 몰려 있기도 하다. 그림을 통해 우리는 주인공이 느꼈을 단절과 고립, 소통 불가의 고독감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주인공에게는 누명을 쓴 고통보다 혼자가 되어 맞서는 외로운 싸움이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정의가 이기지 못하는 책의 결말은 씁쓸한 여운을 남기고 독자들은 해피엔딩의 가뿐함 대신 불편한 생각의 거리를 떠안는다. 전작 『다른 사람들』에서 다름에 대한 눈에 보이는 차별을 다루었던 작가는 『거짓말』에서 다시 진실 뒤에 감추어진,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되기 위해 ‘나’를 포기하는 두 주인공의 닮은 모습은 사회라는 큰 옹벽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개개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다수 앞에서의 소수, 전체 앞에서의 개인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억압은 누구나 겪어 보았지만 직면하기 불편한 우리들의 아픈 감정이다. 이를 거침없는 그림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작가는 낯선 방식의 공감과 묵직한 위로를 전한다.
::: 작가 미안
일상으로부터 비롯된 소소한 이야기들을 짓고 있습니다.
『나씨의 아침 식사』와 『다른 사람들』을 쓰고 그렸습니다.
앞으로도 누군가가 공감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나누는 것이 꿈입니다.